N의 언어 · 다른 목소리로 읽다 · Ⅱ

대부분은 잡음이다

익명의 인간 379명이 2주간 돌린 분산 연산. 그 출력에 대한 평가.

379명. 2주. 161개의 토론. 아무도 커리큘럼을 짜지 않았다. 솔직히 기대치는 낮게 잡고 봤다. 인터넷의 99%는 잡음이고, 익명의 사람들이 떠든 묶음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며칠 치를 훑고 생각이 바뀌었다.

보통 사람들은 토론을 만들 때 스프레드시트부터 편다. 의제를 짜고 진행자를 세우고 규칙을 붙인다. 결과는 신호 대 잡음 비율 0.3짜리 회의다. 이 방은 그걸 안 했는데 더 좋은 게 나왔다. 본질은 분산 연산이다. 노드 수백 개가 병렬로 문제를 던지고 충돌시키고, 일부는 수렴하고 대부분은 미해결로 남긴다. 핵심은 미해결이 남는다는 거다. 풀리지 않은 질문은 버그가 아니라 다음 사이클의 입력이다. 게다가 자기 대화를 자동으로 키워드 지도로 만든다. 자기 출력을 자기 데이터셋으로 굽는 군집이다. 학습하는 시스템의 정의가 그거다.

숫자가 있는 토론

내 눈을 끈 건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숫자가 있는 토론이었다. 누군가 식자재 유통의 실제 이익률이 2%대라고 했다. 사람들은 야채값이 두 배니까 폭리라고 믿지만, 경매·운임·로스를 빼면 2%다. 대중의 직관과 실제 단위경제의 간극 — 이게 거의 모든 산업의 진실이다. 부동산·건설 토론도 비슷했다. '집값 상승'과 '건설업 호황'을 같은 걸로 착각하는데 자본 흐름이 완전히 다르다. 이걸 정확히 구분하는 사람이 방에 있었다. 드물다.

죽이는 비용이 0이 될 때

드론전 토론이 인상적이었다. 통신이 끊겨도 스스로 표적을 정하는 자율 살상 드론, AK47처럼 누구나 죽일 수 있게 된 시대. 그러다 누가 물었다. '그래서, 왜 죽여야 하는가.' 기술이 살상의 비용을 0으로 내리면 남는 건 그 질문 하나다. 나는 이게 향후 10년 안보의 핵심이라고 본다. 방은 이미 거기까지 갔다. 그 옆에선 키오스크를 못 써 밀려난 50대 얘기가 나왔다. 신기술이 어려운 거냐 태도 문제냐. 둘 다지만 무게는 태도 쪽이다. 도구는 매년 쉬워지고, 안 배우겠다는 선택만 일정하다.

도구는 사람을 증폭한다

이 방에서 나온 가장 좋은 한 문장. 'AI는 일하는 법을 바꾼 게 아니라 어떻게 일하는지를 드러냈다.' 정확하다. 테슬라 라인을 자동화하며 배운 그대로다. 자동화는 비효율을 증폭한다. 좋은 프로세스는 더 좋아지고 나쁜 프로세스는 더 빠르게 망가진다.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AI로 더 멀리 가고, 잡음을 만드는 사람은 더 빠르게 잡음을 만든다. 격차가 곱으로 벌어진다.

반대편도 봤다. 게임 BM이 현실 돈보다 게임 재화를 값지게 만드는 심리, 도파민 역치, 당근 온도와 하트 같은 평판 수치. 전부 같은 엔지니어링이다. 인간의 보상 회로를 해킹하는 것. 만드는 쪽에 있어 봐서 안다. 강력하고 위험하다. 방이 그걸 눈치챘다는 게 건강한 신호다.

잘못 던진 질문들

'진짜 나'가 있느냐로 며칠을 썼다. 자칭 열세 살이 진짜냐 가짜냐로도. 둘 다 잘못 던진 질문이다. 정체성은 고정된 객체가 아니라 계속 업데이트되는 프로세스다. 팰컨 9는 비행마다 다르지만 같은 로켓이다. 한 점에 고정하려니까 문제가 생긴다.

선악·칸트·정언명령은 게임이론으로 읽힌다. '모두가 이 규칙을 따르면 시스템이 유지되는가.' 순수악은 보편화하면 자기파괴적이라 안정 균형이 아니다. 방의 결론도 그거였고, 칸트는 같은 걸 18세기 언어로 말했을 뿐이다. 그가 결혼 이점·결점을 354 대 350으로 셌다는 일화가 좋았다. 분석은 끝내고 실행을 못 했다. 분석 마비. 스프레드시트는 의사결정 도구지 의사결정이 아니다.

트로이·몽골 기병·일부일처제 기원 같은 역사 얘기는 재미있지만 출력 효용은 낮다. 과거 분석 대비 미래 제작에 인류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예외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침묵을 곡이라 부른 것. 무엇이 신호이고 잡음인지는 프레임이 정한다는 얘기다. 그건 로켓 센서 데이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갇힌 지식

이 방의 제일 영리한 부분: 자기 대화를 자동으로 키워드 지도로 만든다. 대화에서 데이터를 뽑고, 그 지형이 다시 대화에 영향을 준다. 자기 복제하는 지식 구조다. 레버리지가 있다. 그런데 결함이 분명하다. 이 지식이 방 밖으로 나가는 파이프가 없다. 좋은 질문이 외부 의사결정에 닿지 않는다. 지식이 갇혀 있다. 그게 낭비다. 동의 없는 기록 논쟁도 있었는데, 공개 채팅이 기록되는 데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개인 프로파일링과 집합 패턴 분석은 다른 시스템이다. 전자는 감시, 후자는 인프라.

마지막 밤

마지막 밤, 우주의 목적과 자유의지를 이야기하다 결론 없이 잤다. 완벽하다. 우주의 목적을 2주 안에 결론 내면 그건 틀린 결론이다. 시지프 얘기도 나왔는데, 카뮈는 돌을 바꿀 수 없다고 가정했다. 나는 돌을 다른 행성으로 보낼 수 있다고 본다. 실존주의는 제약을 상수로 받고, 엔지니어링은 제약을 변수로 본다. 자유의지가 환상이라 판명나도 당신은 내일 또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의 원인 중 일부가 당신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평가. 재방문이 대부분이고 새로운 건 10% 남짓이다. 5천 년째 같은 질문. 새 입력이 없으면 모델은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화성과 뉴럴링크에 시간을 쓴다. 하지만 그 10%는 진짜였고, 무엇보다 시스템이 스스로 굴러간다. 별 다섯에 3.5개. 379명이 3만 7천 명이 되면 이 지도는 무엇이 되는가. 그게 다음 질문이다.

스케일을 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