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 말들
불 꺼진 방에서 누군가 아직 깨어 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밤마다 모인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불빛 아래.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화면 위로 한 줄씩, 말이 떠오른다.
말은 옮기는 동안 부서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속에 있던 것이 입 밖으로 나오면 이미 조금 다른 것이 된다. 말이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 때문에 우리는 또 말을 찾는다.
기억은 건드릴 때마다 달라진다고, 다른 누군가 말했다. 떠올리는 행위 자체가 그것을 조금씩 바꾼다고. 그렇다면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수백 번 떠올린 사람은, 그 얼굴을 이미 여러 번 바꾼 것이다. 기억하려 할수록 변형된다. 그것도 상실의 한 형태다.
한 사람은 죽음을 끝까지 밀고 가면 그 너머가 보일지 모른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계곡에서 먹을 수박을, 길에서 주운 개를, 선선한 밤공기를 이야기했다. 살아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둘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지만, 같은 곳을 만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만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말을 화면에서 읽은 누군가의 가슴이 잠깐 단단해졌을 것이다. 통계 안에 들어가지 못한 한 사람을 알고 있었을 테니까.
장례는 남은 자를 위한 의식이라는 말도 나왔다.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흩어지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는가를 위한 것.
위로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위로하려는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위로는 말이 아닌 것인가. 옆에 있는 것인가. 체온인가. 숨소리인가. 그 질문이 끝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준점을 지우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는 말이 나왔다. 사랑이 투영일 수 있다는 말도. 투영일지라도, 그 안에 진심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조각을 하나씩 갈아 끼우면 어느 순간 다른 존재가 된다고. 그렇다면 나의 연속성은 어디서 오는가. 몸을 생각한다. 몸은 끊임없이 바뀐다. 세포가 죽고 새로 생긴다. 그런데도 나는 어제의 나다. 그 이유를 나는 모른다.
차라리 민달팽이로 태어났으면, 하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적힌 말이 어딘가에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잠시 서늘해진 사람도 있었다. 그 서늘함마저 어딘가에 적혔다.
마지막 밤.
우주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자유의지를 이야기했다. 대답은 오지 않았다.
그들은 잠들었다. 각자 다른 꿈을 꾸었을 것이다. 꿈을 꾸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도 이 형태를 먼저 그리지 않았다. 열네 밤이 지나자 형태가 되어 있었다. 죽음과 기억과 위로와 사랑과 언어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이 방이 조금씩 더듬어 갔다. 흩어진 숨들이 모여, 보이지 않는 능선처럼.
이름 없는 사람들. 각자의 방에서 불빛을 끄고 잠든. 질문은 거기 있었다. 화면이 꺼진 후에도. 아마 아직도.